[태그:] 고용노동부

  • 숨고르기 청년 — 정부는 왜 국민이 비웃을 용어를 계속 만들까

    숨고르기 청년 — 정부는 왜 국민이 비웃을 용어를 계속 만들까

    며칠 전 고용노동부가 “백수”를 “숨고르기 청년”이라 표기한다는 기사를 봤다.

    댓글창은 이미 조롱과 비판으로 가득했다. “세금으로 이런 거 만드냐”는 냉소적 반응이 압도적이었고, 인스타그램의 관련 콘텐츠에는 취업준비 중인 친구를 태그해서 “숨고르기 청년”이라며 놀리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백수는 백수라는 말을 자랑스러워한다. 이상한 단어로 비참하게 만들지마라”며 자조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정부가 기대했던 반응은 이게 아닐텐데 “숨고르기 청년”은 공개되자마자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렸다.

    되짚어보면 드문 일도 아니다. 누리집, 누리꾼, 유아차, 차림사 등 참 이상한 단어들이 많이 나왔었다. 담당 부처에는 행정고시까지 패스한 엘리트 관료들이 많을텐데 이런 반응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예측했음에도 그냥 밀어붙인 것인가?

    1. 고용노동부는 실제로 뭘 했나?

    2026년 1월 5일, 고용노동부는 졸업·퇴사 후 잠시 쉬고 있는 청년을 “숨고르기 청년”으로 명명하고, 이들을 집중 지원할 ‘일자리 첫걸음 보장센터’를 10개 대학에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신년 인사회 등 공식 석상에서 ‘쉬었음 청년’ 대신 ‘준비 중 청년’ 같은 표현을 쓰겠다고 공언해 왔다.
    [출처: 연합뉴스 2026-01-05, SBS비즈 2026-01-05, 인사이트 2026-03-24]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숨고르기 청년 정책의 주관 부처인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건물
    고용노동부는 2026-01-05 ‘숨고르기 청년’ 정책을 공식 발표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쉬었음”은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중 “특별한 이유 없이 쉬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분류다. 2026년 초 청년층(15~29세) 쉬었음 인구는 월 50만 명대를 오르내렸고, 이 숫자가 늘 때마다 언론은 “청년 백수 급증”과 같이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분류 자체가 이미 낙인이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낙인 문제를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낙인을 지우려던 시도가 오히려 더 큰 조롱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정부가 취업준비생을 존중하기 위해 만든 “숨고르기 청년”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고 비꼬는 혐오 표현이 되어 버렸다.

    2. 누리집·유아차 등 우리는 이미 여러번 겪었다

    한국 정부의 용어 정책에는 계보가 있다. 국립국어원은 1977년부터 순화어 자료집을 펴냈고, 2004년에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을 개설해 외래어·어려운 한자어를 시민 참여로 다듬는 사업을 본격화했다.

    원래 말순화어제안 주체/시점결과
    홈페이지누리집국립국어원, 2004년 이후공공문서 한정, 민간 정착 실패
    네티즌누리꾼국립국어원, 2004년 이후뉴스 일부 사용, 대중은 ‘네티즌’ 유지
    블로그누리사랑방국립국어원, 2000년대 중반교과서 외 거의 통용되지 않음
    유모차유아차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성평등 언어 캠페인(2018), 국립국어원 등 권고일부 채택, 찬반 격화

    [출처: 국립국어원 다듬은말 DB, 머니투데이 2020-07-28 ‘유모차→유아차’ 서울시 캠페인 보도]

    공통점이 보인다.
    공공기관에서는 살아남는 용어가 민간에서는 거의 안 쓰인다. 국립국어원 스스로도 공공언어 실태 조사에서 “순화어의 민간 정착률은 낮다”고 인정해 왔다. 그럼에도 사업은 중단된 적이 없다. 해마다 새 다듬은말 후보가 공개되고, 해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조롱받는다. 왜 그럴까?

    3. 관료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3-1. 언어가 프레임을 만든다는 믿음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언어가 사고의 틀을 지배한다고 썼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코끼리가 머릿속에 들어와 버린다. 세금을 ‘세금 구제(tax relief)’라고 부르면 세금은 고통이 되고, ‘세금 투자’라 부르면 생산적 행위가 된다. [출처: George Lakoff, Don’t Think of an Elephant! (2004)]

    ‘쉬었음’을 ‘숨고르기’로 바꾸려 한 논리는 이 프레임 이론의 단순화 버전이다. 부정적 프레임(무기력)을 긍정적 프레임(준비)으로 치환하면 인식도 따라온다는 가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3-2. 하지만 레이코프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이코프는 단어 하나로 프레임이 바뀐다고 한 적이 없다. 프레임은 은유 네트워크·제도·서사 반복을 통해 구축된다고 썼다.

    정부가 “숨고르기”라고 한 번 선언한다고 청년이 스스로를 숨고르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지 오웰이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에서 경고한 대로, 현실과 어긋나는 수식어는 듣는 사람에게 “이 말은 거짓말이다”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출처: George Orwell,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한국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처리수’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대중은 “뭔가 숨기려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완곡어법은 실체가 그대로인 채 이름만 바뀔 때 오히려 불신의 근거가 된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상징하는 언어 꼭두각시 메타포: 언어가 사고의 틀을 조종한다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서 언어는 은유 네트워크와 서사 반복을 통해 구축된다. 단어 하나로 인식이 바뀌지는 않는다.

    3-3. 관료제의 상징정치 인센티브

    관료가 연단에서 자화자찬하는 풍자 일러스트: 실질 정책 대신 상징적 성과를 추구하는 관료제 인센티브
    머리 에덜먼의 상징정치론: 많은 공공정책은 실질적 문제해결보다 “다루고 있다는 상징”을 생산한다.

    정치학자 머리 에덜먼(Murray Edelman)은 『정치의 상징적 사용(The Symbolic Uses of Politics, 1964)』에서 많은 공공정책이 실질적 문제해결보다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상징”을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출처: Murray Edelman, The Symbolic Uses of Politics (1964)]

    관료 조직의 인센티브 구조에서 이건 합리적이다.

    • 가시성: 청년 실업의 구조적 원인(노동시장 이중구조, 산업 전환, 학력 인플레이션)을 고치는 건 10년짜리 과제다. 용어 교체는 당일 보도자료 한 장이면 끝난다.
    • 위험 회피: 실질 정책은 실패하면 책임이 날카롭게 돌아오지만, 용어 교체는 실패해도 “취지는 좋았다”로 마무리된다.
    • 저비용 시그널링: “청년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 단어 한 줄이 제일 싸다.

    관료들이 멍청해서 이런 용어를 만드는 게 아니다. 관료제가 이런 행동을 합리적 선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비웃음은 예측하지 못한 게 아니라 감수한 비용이다. 사업 자체가 없었다는 평가보다, 이름이 놀림받았다는 평가가 조직 내부에선 훨씬 낫다.

    4.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다른 나라는 같은 청년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국가/기구용어핵심 접근
    영국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1999년 정부 보고서에서 도입된 통계 분류 용어. 가치 판단 없는 기능적 정의.
    OECDNEET 15-29각국 비교용 표준 지표. 공식 통계명에 수식어 없음.
    일본니트·프리터·히키코모리·청년무업자(若年無業者)상태별 구분. 정부 백서는 중립적 분류명 유지, 정책 이름에 ‘사회참가지원’ 같은 목적어를 붙인다.

    [출처: UK ONS, NEET statistics / OECD Indicators / 厚生労働省 白書]

    분류 통계명에는 가치 판단을 안 붙이고, 프로그램 이름에 의도를 담는다.
    영국은 통계는 NEET로 두고 프로그램을 “Youth Guarantee”처럼 약속 기반으로 명명했다. 일본은 ‘무업자’라는 중립 분류를 유지하면서 지원센터 이름은 ‘지역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地域若者サポートステーション)’으로 붙였다.

    즉, 실체를 가리는 리브랜딩이 아니라 분류와 지원을 언어적으로 분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숨고르기 청년”은 이 분리가 실패한 사례다. 분류 자체를 리브랜딩해버리니 통계와 정책 어느 쪽에도 정직하지 않은 말이 됐다.

    5. 그럼 뭘 해야 하나?

    5-1. 분류명과 정책명을 분리해야 한다

    “쉬었음”은 경제활동인구조사의 분류명이다. 바꾸고 싶으면 통계청과 협의해 국제기준(NEET)에 맞춰 “청년 비경제활동인구(교육·훈련·구직 비참여)” 같은 기능적 용어로 고치면 된다. 분류명을 감성어로 덧칠할 게 아니라, 지원 프로그램 이름을 “일자리 첫걸음 보장” 같은 정책 브랜드로 붙이면 분류와 정책이 각자 할 일을 한다.

    5-2. 예산 배분과 성과지표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이번 발표에서 확인 가능한 숫자는 “10개 대학에 일자리 첫걸음 보장센터 신설”뿐이다. 청년 일자리 전체 예산 중 이 센터가 차지하는 비중, 대학당 배정액, 몇 명을 지원하고 어떤 성과지표로 측정할지가 같이 공개되지 않으면 “숨고르기 청년”이라는 이름만 남고 사업 실체는 증발한다. 정부 입장에서도 손해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작명 논쟁의 냉소에 가려지고, 나쁜 프로그램이면 이름값 뒤에 숨어버린다. [추정: 구체 예산 규모는 고용노동부 2026년 사업설명자료 공개 시 확인 가능]

    5-3. 순화어는 권고에 그쳐야 한다

    국립국어원의 다듬은말이 민간에 강요되지 않는다는 걸 정부가 먼저 인정하면 된다. 공공문서에서는 일관된 용어를 쓰되, 시민의 말을 교정하려 들지 않을 때 오히려 공공 언어의 권위가 덜 훼손된다.

    마치며

    관료들이 바보라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니다. 관료제 인센티브에서 ‘용어 리브랜딩’은 저비용·저위험·빠른 발표·상징적 성과라는 네 박자가 맞는 합리적 선택이다. 문제는 그게 조직 내부 합리성일 뿐이라는 데 있다.

    시민 입장에서는 같은 돈으로 이름 바꾸기에 공을 들이느니 한 사람이라도 더 일자리를 찾게 돕는 게 합리적이다. 두 합리성이 어긋날 때마다 시민은 조롱으로 답한다. 조롱은 불친절한 피드백이지만, 피드백이긴 하다.

    그러니 다음에 정부가 새 순화어를 들고 나올 때 국민이 먼저 할 질문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이 이름 바꾸는 데 들어간 시간과 예산만큼, 실제 문제는 얼마나 바뀌었습니까?”

    이 질문이 관료제 내부 합리성과 시민 합리성을 다시 정렬시키는 최소한의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