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을 통해 상대방의 계좌 거래내역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보를 사실관계가 같은 다른 소송이나 형사 고소 시 증거로 제출하면 어떻게 될까.
과거 민사소송 과정에서 취득한 피고의 금융거래내역을 보고 사기를 확신하여 형사고소에 그 자료를 증거로 제출한 적이 있다. 당시엔 법원을 통해 적법하게 받은 자료라 당연히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나 그때 그 행위가 자칫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가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룬 대법원 판례를 소개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방어권 행사를 위한 범위 내라면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당연히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 요약
민사소송에서 법원의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을 통해 확보한 상대방의 금융정보를 다른 소송이나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행위는 금융실명법 제4조 제4항 위반이 될 수 있고, 이에 금융실명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형사처벌(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소송상 주장의 증명이나 방어권 행사를 위한 경우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대법원 2025. 9. 4. 선고 2022도16512 판결
주식 양도 계약, 그리고 사라진 매매대금
사 대표 A씨는 자신이 소유한 회사의 주식을 양도하기로 하고, 상대방 B씨 측과 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매매대금은 경영자문사 명의의 계좌로 받기로 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만 입금하고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A씨는 양수도계약을 해제하고, 변호사 C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상대방을 상대로 계약해제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을 통해 확보한 상대방의 계좌 거래내역

소송 과정에서 변호사 C는 “경영자문사 계좌로 입금된 매매대금이 실제로 어디로 갔는가?” 라는 의문을 품었다. 이에 변호사 C는 법원에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하여 상대방 회사와 그 기획이사의 은행 거래내역이 법원에 제출되었다.
거래내역을 확인한 결과,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경영자문사 계좌에 입금된 매매대금이 입금 직후 곧바로 제3자에게 송금되었다. A씨에게 돌아간 돈은 사실상 없었다. 처음부터 매매대금을 지급할 의사 없이 주식만 가져가려 한 것이 아닌가.
거래내역을 들고 경찰서와 법원을 오간 변호사

변호사 C는 이 거래내역을 무기 삼아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첫 번째, 상대방 기획이사 등을 사기미수 혐의로 경찰에 형사고소하면서 거래내역을 증거로 제출했다. 매매대금이 곧바로 빠져나간 흐름이 사기 의도를 입증할 핵심 증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두 번째, 상대방 기획이사가 별도로 제기한 주식 명의개서 소송에서, 답변서에 같은 거래내역을 서증으로 첨부했다. “매매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으니 계약은 해제되었다”는 주장의 근거였다.
세 번째, A씨가 상대방을 상대로 사해행위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상대방 회사의 거래내역을 다시 증거로 제출했다. 이번에는 대표이사와 그가 운영하는 회사들 사이에 재산이 뒤섞여 있으므로 법인격 부인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네 번째, 주식명의개서금지 가처분 신청에서도 같은 거래내역을 또 한 번 증거로 냈다.
정리하면, 하나의 민사사건에서 법원 명령으로 확보한 금융거래내역을 형사고소 1건, 다른 민사사건 3건에 걸쳐 반복 제출한 것이다.
상대방의 역습: “그 자료를 다른 데 쓴 건 범죄 아닌가?”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변호사 C가 하나의 소송을 위해 법원에서 받은 금융정보를 다른 소송과 형사고소에 사용한 행위 자체가 금융실명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맞고소를 한 것이다.
검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변호사 C와 A씨를 기소했다.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1심 판단을 뒤집고 A에게 벌금 2백만 원(선고유예), 변호사 C에게 벌금 7백만 원(선고유예)을 선고했다. 제1 민사사건의 심리를 위해 제출명령으로 받은 금융정보를 형사고소나 다른 민사소송에 사용한 것은 명백한 “목적 외 이용”이고, 정당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 2025. 9. 4. 선고 2022도16512 판례 분석
1. 소송당사자도 금융실명법의 규제 대상이다.
금융실명법 제4조 제4항은 금융회사 등이 법원의 제출명령 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제공한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알게 된 자가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 목적 외 용도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 “알게 된 자”의 범위다. 금융정보를 제공받는 기관(법원, 수사기관)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소송 과정에서 그 정보를 열람하게 된 당사자나 변호사까지 포함하는가.
금융실명법 제4조(금융거래의 비밀보장)
④ 제1항 각 호[종전의 금융실명거래에관한법률(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을 말한다) 제5조 제1항 제1호부터 제4호까지 및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법률 제5493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을 말한다. 이하 같다) 제4조제1항 각 호를 포함한다]에 따라 거래정보등을 알게 된 자는 그 알게 된 거래정보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그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누구든지 거래정보등을 알게 된 자에게 거짓 또는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그 거래정보등의 제공을 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금융위원회 또는 금융감독원장이 제1항 제4호 및 제6호에 따라 알게 된 거래정보등을 외국 금융감독기관에 제공하거나 거래소가 제1항제7호에 따라 외국거래소 등에 거래정보등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대법원은 소송당사자와 소송대리인도 “알게 된 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소송 과정에서 구 금융실명법 제4조 제1항 제1호를 근거로 한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에 따라 금융회사 등이 거래정보 등을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해당 소송의 당사자나 소송대리인 등이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면 구 금융실명법 제4조 제4항의 ‘제1항 각 호에 따라 거래정보 등을 알게 된 자’에 해당한다.”
즉, 법원의 제출명령으로 금융정보를 적법하게 확보했더라도 소송당사자와 소송대리인은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 목적 외 용도 사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열람 허가를 얻어 비밀문서를 봤다고 해서 그 내용을 다른 곳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볼 수 있는 권한”과 “쓸 수 있는 권한”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민사소송 과정에서 사실조회 · 문서제출명령 · 문서송부촉탁 등으로 상대방의 금융거래내역을 확보한 소송당사자와 변호사도 금융실명법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 다른 소송이나 수사기관에 제출하면 “목적 외 이용”이 된다.
A와 변호사 C는 “쟁점이 공통된 관련 사건이므로 목적 내 이용”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대법원은 제1사건의 심리를 위해 법원의 명령으로 제공 받은 금융정보를 다른 사건에 사용하는 것은 “목적 외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해당 소송의 심리”라는 특정 목적에 한정되는 것이지, “같은 분쟁의 해결”이라는 넓은 목적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양수도계약에서 파생된 사건이라 해도, 법원의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은 제1 민사사건의 심리를 위해 내려진 것이므로 제2, 3, 4 민사사건이나 형사고소 절차에 사용하면 목적 외 이용이다.
3. “목적 외 이용”은 맞지만 정당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앞선 두 쟁점에서 모두 원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소송당사자도 규제 대상이 맞고, 목적 외 이용도 맞다. 그런데 세 번째 쟁점에서 원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A와 변호사 C의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 금융실명법 제4조 제4항, 구 개인정보 보호법 제19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범죄혐의에 대한 방어권 행사를 위하여 금융거래정보 또는 개인정보가 포함된 소송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 고소·고발 또는 수사절차에서 범죄혐의의 소명이나 방어권의 행사를 위하여 금융거래정보 또는 개인정보가 포함된 증거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경우에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하여 형법 제2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대법원은 아래 요소를 이 사건 사실관계에 적용하여,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적법한 수집 경위: 법원의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을 통해 적법하게 확보했고, 수집 과정에서 위법행위나 다른 법익 침해가 없었다.
제출 목적의 정당성: 형사고소에서는 매매대금이 곧바로 제3자에게 빠져나간 사실로 사기미수 혐의를 소명하려 했고, 다른 민사소송에서는 매매대금 미지급·법인격 부인 등 핵심 쟁점의 증명에 사용했다. 모두 방어권 행사 또는 소송상 주장 증명에 직결된다.
제출 상대방이 국가기관: 자료를 제출받은 곳이 제3자가 아닌 법원과 수사기관이다. 이들 기관에는 열람·복사 절차에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적용되므로, 무관한 제3자에게 유출될 위험이 크지 않다.
정보의 제한된 범위와 성격: 단일 금융계좌에 대한 약 1년간의 거래내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였다. 광범위한 경제적 상황 정보가 포함된 것이 아니었고, 사상·신념·건강·성생활 등 민감정보도 없었다.
결론
대법원은 원심의 유죄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이로써 소송에서 확보한 금융정보를 다른 소송이나 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하는 행위가, 일정한 요건 하에서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법리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5도13141 판결에서 같은 법리를 재차 확인하였다.
나의 경우 고소장 접수 이후 상대방의 요청에 따라 합의를 하고 법적조치를 전부 취하하면서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상대방이 다른 판단을 내렸다면 나 역시 형사고소를 당할 수 있었다. 위 판례가 나온 것은 2025년이고, 나는 그 이전인 2022년에 그랬으니 벌금형 정도는 받았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위 판례를 보고 “소송 과정에서 받은 금융정보를 다른 소송에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대법원은 위 사건에 대해서 범죄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정당행위에 해당하니 처벌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고, 나의 행위에도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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